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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处
期刊:The Journal of Asiatic Studies
日期:2018-12-31
卷期号:61 (4): 125-164
标识
DOI:10.31930/jas.2018.12.61.4.125
摘要
전통 동아시아 질서는 중화질서나 조공체제 개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정태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전후 조명관계는 사대자소(事大字小)와 같은 중화질서의 원칙이 국가의 생존이라는 현실적 요구에 굴절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초기 일본과 독자적 접촉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했던 조선의 정책은 사대의 원칙에서 이미 벗어난 일이었다. 그것은 히데요시가 정명향도의 구호를 제기했을 때, 조선과 일본의 결탁 가능성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적어도 조선 스스로 문책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했다. 그것은 명과의 관계에서 소극적인 태도의 원인이 되었다. 명의 입장에서도 조선에 대한 자소의 토대는 취약했다. 히데요시의 위협에 대해서 명은 자국의 연해지역에 대한 방어를 강화에 급급했고, 조선의 방어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양국간의 불신은 선조의 내부요청에 대한 명의 거부에서 극적으로 나타났다. 명은 왜적이 국왕과 백성들 사이에 섞여서 요동에 들어올 것을 걱정했다. 그와 함께 명 자신이 전쟁에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결국 조명이 왜적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기까지는 9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침략에 대한 초기 협력과 대응의 실기(失期)는 전쟁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큰 피해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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