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holicism and Women in the Royal Court of King Sunjo Period in the late Chosun Dynasty
作者
Joo Park
出处
期刊:Women and History [Korean Association of Women's History] 日期:2008-06-01卷期号:null (8): 1-19
标识
DOI:10.22511/women..8.200806.1
摘要
1801년 신유박해로 남녀노소, 신분의 구분없이 3백명 이상의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때 많은 여성들이 참수되거나 유배되었다. 여성신자들 중에는 왕족여성과 나인 신분의 여성들이 있었다. 왕족 여성으로 송씨는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 인(철종의 조부)의 처이고, 신씨는 은언군 인의 장자인 상계군 담의 처로 송씨의 며느리가 된다. 상계군 담이 독살되고, 은언군 인은 역모의 화근으로 지목되면서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었을 때 송씨와 신씨는 폐궁에 외롭게 살고 있었다. 아들과 남편을 잃고 폐궁에 살고 있던 송씨와 신씨는 인간의 슬픔을 잊고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러나 신유박해 때 송씨와 신씨 두사람은 주문모 신부로부터 영세받은 사실과 주신부에게 피난처(폐궁)를 제공했던 사실이 드러나 재판과 신문의 아무런 법적 형식도 거치지 않고 정순왕후의 하교에 의해 3월 26일 사약을 받았고, 은언군 인도 강화도에서 5월 29일에 사학죄인이라는 명목으로 사사되었다. 그러나 정순왕후가 순조 5년(1805)에 죽고 안동김씨 등이 정권을 장악하자 헌종 15년(1849)에 은언군 내외의 작위를 회복하는 조처가 취해졌으며, 철종 즉위년에는 상계군 내외의 복작을 명하였다. 한편 나인 신분으로 강경복과 문영인이 사형선고를 받아 1801년 5월 22일에 순교했다. 궁녀 강경복은 폐궁에서 외롭게 사는 주인 송씨와 신씨를 모시며, 주문모 신부와 강완숙에게 직접 교리를 배우고 영세한 순교자였다. 궁녀 문영인은 궁 안에서 병에 걸려 집으로 돌아오게 되며 그 후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신앙을 증거하는 순교자가 되었다. 요컨대 같은 왕실여성이었지만, 권력을 장악한 정순왕후 김씨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당시까지 유례없는 천주교 박해를 행하였는데 반하여, 왕족여성과 궁녀들은 정순왕후가 내린 천주교 탄압으로 인해 순교하였던 것이다.